솔직히 저는 대형마트가 이렇게까지 무너질 수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홈플러스 신도림점 근황을 접하고 나서야 비로소 실감했습니다. 3,000평짜리 매장에 손님이 10명도 안 된다는 것, 맥주 코너에 맥주 대신 텀블러가 놓여 있다는 것. 유통 공룡의 파산이 이런 모습으로 현실에 드러나는구나 싶어 묘하게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줄세우기 진열, 직접 봐야 느낄 수 있는 기괴함
혹시 '페이싱(facing)'이라는 유통 업계 용어를 들어보셨습니까? 페이싱이란 매대 진열 시 상품을 앞쪽으로 당겨 정돈함으로써 매장이 가득 찬 것처럼 보이게 하는 기법입니다. 정상적인 매장에서는 상품이 매대 안쪽까지 빽빽하게 채워진 상태에서 페이싱을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재고 자체가 없는 매장에서 페이싱만 하면, 맨 앞줄에만 상품이 한 줄로 서 있는 기묘한 광경이 연출됩니다.
제가 경영난을 겪던 대형마트를 방문했을 때 바로 이 장면을 눈앞에서 봤습니다. 매대 깊숙이 들어가 보면 텅 빈 공간이 훤히 드러났고, 그 빈 공간을 메우기 위해 어울리지도 않는 플라스틱 수납함이나 베개 같은 잡화류가 무질서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신도림점 기사에서 "북한 느낌이 난다"는 손님의 말에 저는 격하게 공감했습니다. 겉보기만 그럴싸하고 실제로는 텅 빈 그 괴리감, 사진으로는 절반도 전달되지 않습니다.
협력사 납품 대금이 밀리며 상품 공급 자체가 끊기자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과채류가 있어야 할 냉장 매대에 국자와 뒤집개가 놓이고, 음료 코너에는 PB(자체 브랜드) 복숭아 음료 수십 병만 나란히 서 있는 풍경. 장을 보러 갔다가 멀티탭 하나 구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 40년 단골 주부의 한숨이 그냥 뉴스 속 이야기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홈플러스 신도림점이 이처럼 빠르게 침체한 배경은 분명합니다. 지하철 1·2호선 신도림역 인근이라는 입지, 배후의 풍부한 거주 세대. 조건은 충분했지만 유통의 본질인 '상품 공급'이 무너지자 입지도, 단골도 모두 무용지물이 됐습니다.
파산 위기, 숫자로 보면 더 무섭습니다
홈플러스의 현재 상황을 이해하려면 회생절차(기업회생절차)라는 개념부터 짚어야 합니다. 회생절차란 부채가 자산을 초과하거나 채무 상환이 불가능한 기업이 법원의 감독 아래 구조조정을 통해 사업을 계속 유지하는 법적 절차입니다. 쉽게 말해, 당장 망하지 않도록 법원이 방패막이 역할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홈플러스는 2,000억 원 규모의 긴급 운영자금 조달 계획을 제출했음에도 법원이 이를 실현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며 회생 폐지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회생절차가 폐지되면 다음 수순은 파산입니다.
이 구도가 무서운 이유는 단순히 기업 하나가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홈플러스는 전국 수십 개 점포에 걸쳐 수많은 협력사, 입점 업체, 임직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2025년 기준 국내 대형마트(하이퍼마켓) 시장은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3사 중심으로 운영되어 왔는데(출처: 한국유통학회), 3위 사업자의 파산은 업계 전반의 구조 재편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홈플러스 파산 위기의 핵심 원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과도한 부채와 매각 이후 누적된 재무 구조 악화
협력사 납품 대금 미지급으로 인한 상품 공급 단절
온라인 커머스(쿠팡, 컬리 등) 성장에 따른 오프라인 매출 감소
법원의 회생계획안 실현 불가 판단으로 회생 폐지 절차 진행 중
제 경험상, 한 번 상품이 빠진 마트는 돌아오기가 정말 힘듭니다. 소비자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대안을 찾습니다. 기사 속 70대 주부처럼 이미 하나로마트와 이마트로 발길을 옮긴 단골들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유통업에서 소비자 이탈은 조용하고 빠르며, 되돌리는 데는 몇 배의 비용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익스프레스 매각, 불행 중 다행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요
홈플러스의 SSM(기업형 슈퍼마켓) 부문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는 지난 6월 하림그룹 산하 NS쇼핑에 인수가 완료됐습니다. SSM이란 대형마트보다 규모가 작은 기업형 슈퍼마켓으로, 주거 밀집 지역 골목 상권에 위치해 근거리 장보기를 겨냥한 업태입니다. 이마트에브리데이, 롯데슈퍼 등이 대표적인 경쟁 업체입니다.
NS쇼핑이 상품 대금 지급 보증을 서면서 납품이 재개된 지 열흘 만에 익스프레스 매출이 이전 대비 16% 증가했고, 신선식품 매출은 30% 이상 뛰었습니다. 제가 이 수치를 보면서 든 생각은 딱 하나였습니다. '유통업은 결국 자금력과 신뢰의 게임이구나.' 대금 지급 보증 하나가 붙자마자 납품업체가 돌아오고, 매출이 오르고, 매장이 살아납니다. 반대로 그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이렇게나 빠르게 죽어버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익스프레스 인수를 마냥 '불행 중 다행'으로 볼 수만은 없다는 것이 솔직한 저의 생각입니다. 도림점 내부에는 아직도 '6월 정상화 안내' 공지가 붙어 있고, 세제 코너에는 제습제와 일회용품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정상화가 진행 중이라는 뜻이지만, 그만큼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NS쇼핑이 내세운 '우리 동네 대표 슈퍼마켓'이라는 목표가 현실이 되려면 단순한 상품 채우기 이상의 전략이 필요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익스프레스 인수는 규모가 비교적 작은 SSM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덩치가 훨씬 큰 대형마트(하이퍼마켓) 부문은 인수 희망자를 찾기도, 매각 절차를 밟기도 훨씬 복잡합니다. 오프라인 유통 시장이 전반적으로 위축된 상황에서 수천 평짜리 공간을 통째로 떠안을 사업자가 나타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국내 대형마트 매출은 2019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온라인 식품 구매 비율은 빠르게 높아지고 있습니다(출처: 통계청).
주말마다 카트를 끌고 온 가족이 북적이던 그 공간이 지금은 텅 비어 있습니다. 대형마트가 한국 소비 문화에서 차지하던 역할이 얼마나 컸는지, 오히려 이렇게 사라질 위기에 처해서야 실감하게 됩니다. 혹시 여러분은 홈플러스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신가요? 저는 이 뉴스를 보며 한참 그 생각을 했습니다.
홈플러스의 행방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결정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한 번 무너진 소비자 신뢰를 되돌리는 건 새 상품을 채워 넣는 것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는 사실입니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인근에 홈플러스 또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장이 있다면 현재 상황을 직접 확인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과 글로 읽는 것은 역시 다르니까요.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또는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