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영수증을 들여다보다가 "분명 같은 제품인데 왜 또 올랐지?" 싶었던 적이 있으실 겁니다. 저도 그런 경험을 꽤 여러 번 했습니다. 그냥 원재료값이 올라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이번에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전분 및 전분당 가격 담합 사건을 보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7년 넘게, 그것도 13차례에 걸쳐 조직적으로 가격을 맞춰왔다는 사실이 꽤 오래 마음에 걸렸습니다.
7년 넘게 이어진 담합 구조, 어떻게 가능했나
일반적으로 기업들이 가격을 올릴 때는 원가 상승이나 환율 변동 같은 외부 요인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상·사조CPK·삼양사·CJ제일제당 등 4개 업체가 2018년 5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무려 7년 5개월 동안 전분 및 전분당의 판매가격을 공동으로 결정해왔다고 발표했습니다. 총 13차례의 합의가 있었고, 과징금 규모는 7,475억 7,800만원으로 역대 최대입니다. 이전 최대 기록은 2010년 LPG 공급사 담합 사건의 6,689억원이었는데, 이번에 그 기록을 넘어선 것입니다(출처: 공정거래위원회).
이 담합이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핵심은 과점시장(寡占市場) 구조에 있습니다. 과점시장이란 소수의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는 구조로, 경쟁자가 거의 없어 기업 간 합의가 훨씬 쉽게 이루어지는 환경을 말합니다. 실제로 이들 4개 업체의 국내 기업간거래(B2B) 시장 점유율은 전분 95.7%, 전분당 86.4%에 달했습니다. 사실상 이 네 곳이 시장 전체를 쥐고 있었던 셈입니다.
담합의 방식도 매우 정교했습니다. 가격 인상 시에는 환율과 원료가 등 인상 근거, 공문 발송 순서와 시기까지 사전에 맞추고 서로 이행 여부를 확인했습니다. 가격 인하 시에는 반대로 인하 폭을 최소화하고 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방식으로 5차례 합의했습니다. 특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국제 옥수수 가격이 급등한 시기를 이용해 담합 시작 시점 대비 전분당 판매가격을 최대 73%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원가가 다시 내려간 이후에도 그만큼 가격을 되돌리지 않아 영업이익을 크게 개선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주목할 또 다른 지점은 할당관세(割當關稅) 문제입니다. 할당관세란 정부가 특정 물품에 대해 일정 물량까지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제도로, 국내 물가 안정과 산업 경쟁력 보호를 위해 활용됩니다. 정부는 2021년부터 가공용 옥수수 약 200만 톤에 할당관세 0%를 적용해 왔습니다. 소비자 물가 부담을 덜어주려는 취지였지만, 그 혜택이 실제 거래처나 소비자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번 담합의 핵심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가격 인상 시: 인상 근거·공문 순서·시기까지 사전 합의, 거래처 협상에도 공동 대응
- 가격 인하 시: 인하 폭 최소화, 인하 시기 최대한 지연
- 관련 매출액 6조 525억 원에 부과기준율 15% 적용해 과징금 산정
- 추가 심의 중인 입찰 담합(관련 매출액 약 9,400억원), 부산물 가격 담합(관련 매출액 약 1조 5,500억원)도 별도 진행 중
소비자 피해, 그리고 제가 직접 느낀 것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기사를 처음 봤을 때 "설마 이 정도일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전분당이 어디에 쓰이는지 알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전분당(澱粉糖)이란 옥수수 전분을 가수분해해서 만든 물엿·올리고당·액상과당 등의 당류를 통칭하는 용어입니다. 단순히 과자에만 들어가는 게 아니라 음료, 빵, 소스, 제지, 철강 등 산업 전반의 원재료로 쓰입니다. 제가 마트에서 집어 드는 거의 모든 가공식품에 이 원재료가 조금씩은 들어가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족과 함께 장을 볼 때 "분명 지난달에 이 가격이었는데" 싶은 순간이 꽤 많았습니다. 과자 한 봉지, 음료 한 캔, 소스 한 병이 각각 몇백 원씩 오른 것이 모이면 생각보다 큰 금액이 됩니다. 저는 그때마다 단순히 원재료 가격이 올라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번 사건을 보고 나니 그 인상분의 일부가 담합으로 인위적으로 부풀려진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정위도 이 부담이 실수요처와 대리점을 거쳐 최종 소비자에게 전가됐다고 명확히 밝혔습니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가격 인상은 시장 원리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 경험상, 소비자 입장에서 원재료가 오를 때 제품 가격이 바로 오르는 것은 체감하기 쉬운 반면, 원재료가 내려갔을 때 제품 가격이 따라서 내려가는 것은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이번 담합 구조가 딱 그 방식이었다는 점이 씁쓸합니다.
공정위는 이번 제재와 함께 전분당 가격을 독자적으로 다시 결정하도록 명령하고, 향후 3년간 반기마다 가격 변경 내역을 보고하도록 했습니다. 이른바 독자적 가격 재결정 명령으로, 밀가루·인쇄용지 담합 사건 등에 이어 네 번째로 내려진 조치입니다. 과징금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사후 모니터링까지 이어진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스럽습니다.
소비자물가지수(CPI)를 보면 식료품 가격 상승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소비자물가지수란 일반 가구가 소비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평균적인 가격 변동을 측정하는 지표로, 체감 물가를 가늠하는 대표적인 기준입니다. 2022년 이후 식품 관련 물가 상승률이 전체 평균을 웃돌았다는 점은 이번 담합 사건과 무관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출처: 한국은행).
이번 사건이 보여주는 건 단순히 기업의 탐욕이 아닙니다. 소수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는 구조 자체가 얼마나 쉽게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담합 행위는 단기적으로는 기업의 영업이익을 높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소비자의 신뢰를 무너뜨립니다. 공정위의 이번 역대 최대 과징금 부과가 단순한 금전적 제재로 끝나지 않고, 시장 구조 자체를 바꾸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저도 앞으로는 가격이 오를 때 당연히 받아들이기보다, 그 이유를 한 번쯤 따져보는 습관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소비자 한 명 한 명의 관심이 모일 때, 공정한 시장 환경도 조금씩 가까워진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법률 또는 경제 분석 조언이 아닙니다.